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다. 담장을 넘는 소리를 들은 남편은 아내에게 “현관 안으로 들어오기만 해봐라” 하고 말했다. 곧 이어서, 도둑이 현관에 들어서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오기만 해봐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둑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편은 속으로 말했다. ‘장롱을 열기만 해봐라.’ 하지만 도둑은 장롱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귀중품을 자루에 모두 담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 남편은 다시 말했다. “다시 오기만 해봐라.”

사막의 날씨는 변화가 심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낮은 뜨겁고 밤은 춥다. 그러다보니 간혹 사막에서 낙타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낙타는 먼저 앞발을 살짝 텐트 안으로 넣는다. 잠시 후에 다리를 밀어 넣고, 다음은 코끝을, 그 다음에는 머리를 넣는다. 주인이 잠자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 다시 다리를 넣고, 이어 몸통 전체가 들어온다. 한번 들어온 낙타를 쫒아내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여기 소개한 두 개의 우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시기의 중요성이다. 모든 일은 시초에 그 결과를 예측하고 미리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도둑이 담장을 넘는 그 순간, 주인은 “도둑이야”를 외치고, 경찰을 부르고 정원에 불을 켜서 도둑을 몰아냈어야 한다. 귀중품을 다 털리고 난 후 “다시 오기만 해봐라” 하고 아무리 외쳐도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주권 수호도 마찬가지다. 침해 받는 그 순간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양안관계를 다루는 중국의 외교력은 눈부실 정도다. 어떤 행사건 중국과 대만이 함께 참석하는 경우, 대만의 대표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은 상당한 압박을 가한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지, 절대로 독립국가가 아니다”라는 것이 중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누군가 대만을 가리켜 ‘중화민국 (Republic of China)’ 이라고 부를 경우 중국 대표는 의제와 관계없이 무조건 ‘중화민국이라는 나라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중국의 주권에 대한 도전은 언어상으로 조차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도 자신들의 주권에 대한 그 어떠한 도전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국제회의에서 간혹 북한(North Korea)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국 대표들이 무의식중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북한 대표는 으레 “북한이라는 나라는 없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있다”고 밝힌다. 북한의 주권에 대한 어떤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다. 금강산에서 총으로 무고한 한국 관광객을 살해했는가 하면 천안함에 어뢰 공격을 가해 수십 명의 해군 장병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최근에는 목함지뢰를 떠내려 보내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며칠 전에는 북방한계선 이남지역에 해안포를 쏘아대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레드라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얼마나 더 심한 도발을 저질러야 대한민국정부는 한국의 주권을 주장할 것인가. ‘중화민국’이라는 한마디의 말조차 허용하지 않는 중국을 보면서, 한국은 과연 주권 수호의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묻고 싶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기리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아마도 그의 젊음과 패기 그리고 열정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케네디 하면 용기라는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 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고, 미국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소유자였던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무사안일만을 목표로 독일과 타협했던 유럽의 여러 지도자들과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주권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한미 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출처: 와싱톤 중앙일보 독자 기고 2010년8월18일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073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