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어떤 나라를 뜻하는 것일까?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으면 선진국인가? 아니면 뛰어난 기술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를 선진국으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선진국이라는 개념에는 굉장히 모호한 기준이 적용된다.

한국도 선진국이 되겠다고 열심이다. 모든 국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매진하고 있다. 과연 선진국은 어떤 나라인가? 과연 우리는 어떤 나라를 지향하고 있는가?

나는 선진국 보다는 ‘살기 좋은 나라’, ‘살고 싶은 나라’ 등의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백범 일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셨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과연 그렇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는 살고 싶다. 그런 나라는 분명 살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변호사를 지칭할 때 ‘Attorney and Counselor at Law’라는 표현을 쓴다. 직역을 하면 ‘법을 다루는 변호사 그리고 조언자’가 된다. 변호사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조언자’라고 하는 표현은 제법 생소하게 들리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Attorney’라는 말만으로 변호사를 지칭하지 않고 ‘Counselor’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왜 카운슬러라는 표현을 쓸까? 카운슬러는 우리말의 상담자 또는 조언자에 해당한다.

변호사가 카운슬러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변호사의 역할이 변론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론은 기본적으로 어떤 입장이 주어졌을 때 그 입장을 옹호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더라도, 또 어떤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변호사는 그 사람의 입장을 변론하고 그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카운슬러는 그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 실수를 하기 전에 그러한 문제점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인사회에는 변호사의 역할 중 카운슬러의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문제가 터지고, 사고가 난 후에야 변호사를 찾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병이 들고 나서 의사를 찾는 격이다. 병들기 전에 의사의 조언을 들었다면, 또는 병이 악화되기 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 들였다면, 문제가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살고 싶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는 변호사가 변론보다는 상담과 조언을 많이 하는 나라다. 법은 무척 복잡하다. 법을 공부했다는 변호사들도 각자 자기 전문분야 만을 다뤄야 할 정도로 복잡해진 법. 일반인이 법을 안다고 하기에는 지나침이 있다. 비즈니스 계약을 하기 전, 신분 변경을 하기 전, 이혼을 하기 전, 상속을 하기 전, 파산을 하기 전 등등. 법과 관련된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하기 전에 미리 미리 변호사와 상담하고 조언을 구하도록 하자. 아름다운 나라, 살기 좋은 나라에서는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기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변호사가 상담을 해주고 조언을 해준다. 몰라서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말자. 어차피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카운슬러의 역할을 함께 부여한 미국 제도를 보면서 나는 새삼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법으로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카운슬러의 역할과 법을 다룰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변호사가 카운슬러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또 사람들이 카운슬러의 조언을 잘 수렴할 때, 우리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출처: 워싱톤 중앙일보 2010년9월9일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083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