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의 가능성도 전쟁의 가능성으로는 상당히 높은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에 자행되는 많은 악행은 평화 시에는 생각할 수 없는 반인류적인 인권유린 행위들이다.

물론 전쟁이 벌어지기 전 각 국가는 정치 행위, 즉 위협과 타협을 적절히 배합해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위협도 통하지 않고 타협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전쟁이라는 극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21세기의 국가는 어느 한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경영 또한 어느 특정인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어져서는 안 된다. 국가 경영은 국익을 전제로 이뤄져야 하며, 국가의 존재는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시대는 변했고 백성은 더욱 더 지혜로워졌다. 우리에 갇힌 짐승을 다루듯 백성을 다루고, 왕 또는 황제라는 한 사람을 위해 나라가 존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국가 이념의 경계는 많이 모호해졌다.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많이 퇴색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물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더 이상 절대자라는 지위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 후진타오주석, 심지어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도 절대자라는 수식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여전히 절대자를 꿈꾸는 자들이 있다. 소위 독재자로 불리는 짐바브웨의 무가비, 수단의 알바시르, 미얀마의 딴쉐, 리비아의 카다피,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한반도의 김정일 등등.

이들은 독재자로 불리지만 그들 역시 모든 권력을 혼자 독점할 수는 없다. 그들도 나름대로 추종세력을 필요로 하고, 견제 세력을 달래야 한다. 무자비한 숙청이 통치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타협하고 회유해야 한다.

1983년 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한다. 서른이 채 안된 젊은 그가 과연 세습된 권력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김정일보다 더 잔혹하다고 외부에 알려졌기에, 김정은이라는 이름에서 피비린내가 연상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새로운 독재자의 등극 서막에는, 늘 그랬듯이 숙청의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공포만큼 확실한 통치 수단이 없다고 하였던가? 하지만, 그 후에는? 한차례의 피바람이 몰아치고 난 후 과연 김정은에게 타협의 여지나 회유의 기술이 과연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북한은 지금 과도기에 서 있다. 한사람의 독재자는 떠나는 길목에 서 있고 또 다른 그 누군가는 그 빈자리에 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북한이 과도기에 들어서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전쟁의 가능성은 수학공식이나 확률처럼 일정 수치를 매길 수 없다. 그 만큼 변수도 많거니와, 더욱이 오차범위가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다. 혹자는 북한이 도발할 때는 오히려 안심해도 된다고 말한다. 북한이 정말 전쟁을 벌일 계획이라면 평화를 위장할 것이라는 말이다.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도발한다는 그 말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우발적인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높인 게 사실이다.

지난 8월24일 김태영 국방장관의 국회 국방위 발언을 환영한다. “적(북한군)이 NLL 이남 해상으로 포를 쏘면 비례성 원칙에 따라 적이 도발한 거리만큼 (북한의) 빈 바다에 쏠 것”이며 “북한군의 포격으로 우리 측이 피해를 당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즉각 응징사격을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 북한이 과도기에 처한 지금, 전략적 명확성이 필요하다. 북한이 남한을 대상으로 실험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분명히 한국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확실한 전쟁 예방책이다.

 

한미 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출처: 워싱톤 중앙일보 2010년8월27일 시론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078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