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다수에 의한 소수의 권리 침해에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다수결이라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고 하는 점이다. 가령 100명의 주민이 사는 동네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최소한 51명 이상이 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적인 절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가령 소를 기를 것인지 돼지를 칠 것인지에 대한 양자택일이 돼야 한다면 다수결에 의해서 소가 될 것인지 돼지가 될 것인지 결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소도 기르고 돼지도 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상적인 상황이요 다수결을 위한 투표가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모두가 만족할만한 그런 이상적인 상황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누군가가 손해를 보고 누군가가 이득을 봐야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소와 돼지 중의 양자택일이 아니고, 농사를 계속 지을 것인지 아니면 공장을 세울 것인지에 관한 선택이라면 어떨까? 이제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아버지 세대는 앞으로도 농사를 짓겠다고 할 것이고, 소위 먹물을 먹었다는 젊은 세대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결정할 수 있겠다. 그럴 때에도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면, 소수에 속하는 그 누군가는 분루를 삼켜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법원이 있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은 200여년의 미국 역사속에서 찬란한 업적을 세워왔다. 다수의 백인에 의해서 흑인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을 때, 흑인의 인권은 백인의 그 것과 동일한 것이며, 흑인도 백인과 동일한 교육을 받고, 같은 시설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그 이전에는 여성의 인권에 관한 판결을 내렸는데, 여성의 투표권이 없던 시절,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투표를 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러하듯 다수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짓밟혔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소수의 권리를 보호 했던 곳이 미국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28일 건강보험개혁법에 관한 판결을 내렸다. 사실 건강보험개혁법은 가진자에게는 필요 없는 법이다. 이미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는, 어찌 보면 짐만 늘어 나는 그런 법이다. 아울러 건강하고 젊은 이에게도 필요가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보험이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위 오바마케어라고 불리워지는 건강보험개혁법은 가지지 못한자, 헐벗은 이를 위해 필요한 법이다. 수입이 모자라기 때문에 또는 지병이 있기 때문에 보험을 들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법이다.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위한 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인에게는 인기가 없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필요 없는 법이기에. 하지만, 소수의 미국인에게는 무척 소중한 법이다. 건강보험개혁법이 없었다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할 소외계층이 바로 그들이기에.

이러한 대법원의 결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로버츠 대법원장이다. 그는 보수 가치가 뚜렷한 대법관으로서 한 때는 롬니 후보에 의하여 상당한 찬사를 받은 사람이다. 롬니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로버츠 대법원장과 같은 법관을 더 많이 임명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한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번에는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케어를 합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오바마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롬니와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배신의 칼을 맞은 것이다. 영원한 보수 가치의 수호자로 여겨졌던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한 면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법과 정치의 분리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결정은 분명히 오바마의 손을 들어 준 결정이다. 오바마 재선에 있어 그가 분명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도록 도와준 결정이다. 하지만 보수적 성향이 뚜렷하던 로버츠 대법원장이 본 것은 2012년 대선 그 이상의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본 것은 소수의 권익이다. 과연 가난한 자, 지병이 있는 자도 보험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인지? 대법원은 건강보험개혁법에 관한 판결을 통해 다시 한번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불침번 역할을 다했다.

 

출처: 와싱톤중앙일보 특별기고 2012년7월12일 임종범 변호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42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