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부터, 중국은 여러 형태로 한국에 제재를 가했다. 한류에 찬물을 끼얹고, 롯데에 대한 여러 불이익을 행하고, 한국의 자동차에 대한 수입 차별도 했다. 그 외 여러 형태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갔다.

이로 인한 어려움을 한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에 전달했다. 의회를 통해, 정부를 통해, 또 경제단체들을 통해. 미국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것은 한국의 문제라는 기본적인 반응이다. 사드를 원했던 것도 한국이고, 사드의 용도도 역시 한국 안보라는 것이다. 과연 주한미군 보호가 우선인지? 한국이 정말 원해서 사드가 배치됐는지는 또 별개의 문제다.

확실한 것은 미국에선 어떠한 구제책도 나오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그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은 것이다. 사드 관련 불거진 중국의 보복 문제는 한국의 문제이지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 애가 생겼는데, 여자 몸에 생긴 아이니 여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발언한다면, 누가 그런 사람을 믿고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과 거리가 멀어진다면, 이것은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사드 관련 한중간의 충돌에 있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한국 편을 들어줬다면, 사드에 대한 한국민의 정서가 지금과 같지는 않았으리라. 미국은 한중 문제에 있어 방관자였다. 인제 와서 사드 결정은 번복할 수 없으니 그대로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국에 대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외교에 있어 모든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안녕이지 색깔의 선명함이 아니다.

한중 갈등 해소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강요만 하는 것은 우방으로서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힘의 우위를 앞세워 일방적인 결정만을 강요하는 경우 언젠가는 그런 일방통행이 부메랑 돼 돌아올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도 일방통행이란 없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구시대적 관념을 가지고, 시간이 마치 거꾸로 흐르는 듯 행동해선 안된다. 동맹 관계를 마치 주종 관계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큰 코를 다칠 수밖에 없겠다.

우리 말에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다는 말이 있다. 태생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어차피 중국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정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등까지 떠밀며 중국으로 보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정치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다루기 때문이다.

사드 관련,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 택일을 강요해선 안된다. 국민의 안녕을 목적으로 한다면, 무엇이 각각의 국민에게 필요한 것인지 심사숙고 해야 한다. 갑질은 을에게 선택이 없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한국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다. 현 시점에서 한국은 그 색깔을 너무 선명하게 해서, 갑에게 을은 더 이상 선택이 없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방관자 역할만 하던 미국은 한국에 강요만 하기 보다는, 한국이 안고있는 문제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등거리 외교가 재가동되는 요즘, 아예 가버리라고 떠밀어선 안된다.   


2017년6월27일 워싱톤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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