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윌슨센터에서 한미 양국 현안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한 측 대표 문정인 특보는 한국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을 원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추가적인 핵 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현 수준의 북핵 전력을 수용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는 이제까지 한미 양측의 공동 목표인 ‘비핵화’와는 정면 배치되는 발언이다. 이 정도의 비중 있는 발언이 고심 없이 나왔을 리는 없다. 문 특보의 발언이 나온 자리엔 한국의 전직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인사들도 있었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분들이 있는데, 즉석에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핵 동결이라는 새로운 지침이 동맹 간의 교감이 없이 나온 것이라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의 새로운 지침을 따르던가, 아니면 미국 나름의 의지대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동맹 간의 굳건한 결속이 있어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면 이는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

물론 미국의 최근 행보는 불안하다. 특히 사드, 전략 자산 관련 일련의 미 측 발언들은 한국에 있어 충분히 위화감을 느낄만한 발언들이다. 하지만, 동맹의 근간을 흔들만한 발언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 특보의 발언은 아주 달랐다. 탈레반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됐다고, 안 그래도 미국 내에선 한국 신정부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발언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나오게 된 점은 무척 큰 의미를 가진다.

역사의 한 전환점이 될만한 발언이다. 미측과의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한측이 발표한 새로운 지침이라면, 이는 대북 문제에 관해선 한측이 주도권을 가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국에 있어 북핵 문제는 한반도 문제로 국한돼 있지 않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문제요, 미국의 패권에 관한 큰 문제인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주도권을 가지고자 해도, 이 부분에 있어 미국이 양보할 수는 없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측의 이해에 대해 존중은 할 수 있어도, 주도권을 넘겨줄 수는 없다. 세계 제일의 패권국인 것이다.

섣불리 선제적인 발표로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따라오든 말든 우리는 우리 길로 간다고 그렇게 한국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만약 미국과 교감이 있어 ‘핵 동결’을 공동 목표로 할 수 있다면, 올바른 순서는 정상회담을 하고, 회담의 산물로서 공동 목표를 발표했어야 한다.

교감도 없이 먼저 발표하고, 이젠 미국의 결정을 촉구한다는 식의 접근은 강한 반발을 유도할 뿐이다. 선제 발표로서 한측이 동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불신만 높일 뿐. 탈레반의 비서실장은 탈레반보다 더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뿐이다. 

물론 한미 정상회담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심했을 수도 있다. 도저히 대북 정책에 있어 뜻을 모을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문 특보의 발언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직에 있는 분이 아무리 ‘개인 자격’이라며 발표했다고 해도, 역시 그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미국 표현 중에 “고양이는 가방에서 나왔다 (the cat is out of the bag)”라는 표현이 있다. 이제 고양이는 나왔다. 고양이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을 수도, 안 나왔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고양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변호사

워싱톤 중앙일보 2017년 6월 21일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363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