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때는 2005년 봄이었다. 서울에서 라이스 국무장관과 회담을 할 때 미측 통역관으로 배석해서 그 분을 만났다. 그 후로 경주, 시드니 등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할 때 또 만났다.

한국에선 바보라고 그를 불렀지만, 미국에선 탈레반이라고 했다. 혹자는 그를 아예 빨갱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그는 미국에 있어 반골이었으며, 골치 덩어리였다.

이제까지 한국의 그 어느 대통령도 그렇게 미국에 쓴소리를 많이 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나도 역시 노통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노통 시절에 나왔던 전작권 환수라던가 작계 50xx 문제 등은 미국 입장에서 예측치 못했던 상황이었으며, 통역관인 나에겐 무던히도 많은 시간을 요하던 일이었다. 노통 퇴임 후 언론을 통해 노통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잡다한 부정부패 뉴스를 접했다. 노통에 대한 나의 평가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나빠졌다.

통역을 하며 짧은 시간 접했던 노통는 그다지 카리스마가 있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집스러웠고,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었다. 아마 노통은 부시 대통령이나 라이스 장관을 만나는 준비를 하면서, 무조건 세게 나가서 기선을 제압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듯. 여하튼 노통은 미측을 상당히 난감하게 했다. 라이스 장관이 그녀의 회고록에 기록한 대로 노통는 예측불능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 중의 하나는 라이스 장관과의 회담에서 라이스 장관이 한 이야기다: “대통령님, 미국은 한국의 우방입니다.” 오죽 라이스 장관이 답답했으면 자명한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강조하며 했을까 싶다. 당시 노통은 미국에서 볼 때 불통이었다.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었다.

시드니에서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노통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답을 얻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여러번에 걸쳐 이런 저런 말로 부시대통령의 비선제공격 발언을 끌어낸 것이다. 하도 노통이 여러번 언급을 해서 부시 대통령은 아예 직답을 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대통령님”으로 답을 했을 정도다. 영어로는 “Thank you, Sir!” 이었는데, 이런 표현은 한국말의 “이제 그만합시다”라는 말에 준한다. 물론 완곡한 표현 방법이다.

노통이 소천했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도 나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수 많은 사람이 매일 죽는데, 노통도 그중의 한 죽음이었을 뿐. 하지만 박근혜 아바타 정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나는 진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이제까지 내가 접했던 노통에 관한 언론 보도는 상당 부분 왜곡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젠 노통의 사진만 보아도 눈물이 글썽인다. 왜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도 무심하게 살았는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지척에서 보면서 왜 한 번도 감사하다고, 존경한다고 말을 못 했는지. 그때 노통이 그렇게 바꾸고자 했던 검찰은 오히려 더 퇴화했고, 노통이 꿈꾸던 세상은 신기루처럼 멀어져만 갔다.

비가 없으면 무지개도 없다고 이어령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믿는다. 한국민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만큼이나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한반도에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홀로 서지 못하는 검찰의 치부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요즘, 썩은 환부가 베어지고 도려져서 부패한 많은 것들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고, 새살이 돋아날 것을 나는 믿는다.

노통는 먼저 갔으나, 그 분의 뜻은 아직 이 땅에 남아 있고, 그의 과업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진실보다 더 큰 품위는 없다”고 하신 말씀, 내 귀엔 범종 소리 마냥 크게 울린다. 나도 그 분이 보고싶다.


한미 법률 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워싱톤 중앙일보 임종범 칼럼  2016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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