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독배는 없어져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다수’가 절대적인 다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과반수 (단순 다수) 경우에도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 51% 속하는 그룹이 49% 속하는 그룹에게 51% 결정을 강요할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맹점 하나다.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법원이 존재한다.

 

민주절차에 의하여 선출되는 의회는 민의를 반영한다.  여기서의 민의는 다수의 의지라는 뜻일 모든 사람의 통일된 의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법원은 소수의 권익을 보호한다.  모든 결정이 다수결에 의해 이뤄진다면, 이는 다수에 의한 횡포일 현대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 

 

미국의 삼권분립을 생각해 본다.  의회는 법을 만들고, 정부는 법을 집행하고, 법원은 법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올바른 법이 만들어 졌는지를 심리한다.  애리조나의회는 불체자를 단속한다는 미명하에 외국인에 대한 불심검문을 가능케 했고, 불체자를 돕는 어떤 행위도 불법으로 단속하겠다는 강력한 법을 통과시켰다.  물론, 애리조나주의 주민 의지를 반영한 법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  법을 만든 과정, 절차 등은 분명히 민주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민주적이지 못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소수의 권리도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  다수에 의해서 통과된 법이 소수의 권리를 짓밟는다면 그것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세계 민주주의 선진 국가로 꼽히는 미국에서도 다수에 의한 횡포는 여러 있었다.  다수의 백인에 의해 소수 흑인들의 인권이 짓밟혔던 때가 있었다.  다수의 백인에 의해 소수의 아메리칸 인디안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으로부터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했다.  세계 2차대전 중에는 다수의 미국민에 의해 소수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수용소에 수감되는 아픈 역사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속의 대사건에는 언제나 민의를 대변한다는 미국 의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의회가 법을 통과시켰고, 정부가 법을 집행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땅에 떨어뜨리고, 인권을 유린한 행위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처럼 의회와  정부의 잘못된 행위를 꾸짖고 올바른 길로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바로 법원이어야 한다.

 

남부의 극심한 인종차별을 바라보면서 마틴 루터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주의 원호는 길다, 하지만 원호는 정의로 굽는다."   의회의 잘못을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법원 본연의 역할이다. 하지만 판결이 내려지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법안을 법원이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법원은 소수의 정당한 권익을 지키는 결정들을 내렸으며 그같은 법원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가능했다고 믿는다.

 

애리조나의 악법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법원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다수결의 횡포 앞에서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소크라테스의 비극이 21세기 미국에서 재연되어서는 된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없어져야 한다.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출처: 워싱톤 중앙일보 2010년5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