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법이라는 말이 미국에 있다. 법은 법이되, 집행이 되지 않는 법. 우리식으로 표현하면장롱 속 법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애리조나에서 최근 시행에 들어간 법안 SB1070은 사실 새로운 법은 아니다. 이미 존재해 온 미국 연방이민법을 주법으로 다시 각색한 것뿐이다.

불체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경찰이 합법적 체류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게 법의 골자다. 풀어서 이야기 하면, 불체자로 의심되는 경우 영주권을 보자고 요구할 수 있다는 법이다. 여기서보이는이라는 표현은합리적인 의심의 근거가 있는 경우를 뜻한다. 제법 심오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애리조나 법과 관련장롱 속 법에 해당하는 법은 연방 이민법의영주권 의무 소지조항을 뜻한다. 연방이민법 8 1404항은모든 영주권자는 자신의 영주권 증명 카드를 언제나 소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법이되 집행되지 않고 있던 많은 장롱 속 법 중의 하나였다. 대부분의 이민자에게는 매우 생소한 법일 것이다. 참고로, 동 조항은 주소 변경 신고도 의무화 하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주소 변경 신고를 하지 않는 영주권자에게 상당한 불이익을 가하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정치인(의원)의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법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이 하는 일은 따지고 보면 법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법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 하지만 법을 제정한다고, 모든 법이 집행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불체자가 늘어난다고 미국에서는 영주권 소지를 의무화 했고, 한국에서는 집창촌이 문제가 된다고 성매매 방지법을 만들었다. 둘 다 얼핏 보기에는 무척 훌륭한 법이다. 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집행할 수 있는 법이 있고 그렇지 못한 법이 있는 것이다. 또 집행을 강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실효를 거둔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의 성매매 방지법은 집창촌을 철폐함으써, 윤락여성들이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파고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 결과로, 성매매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청소년들이 오히려 성매매 현장에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성매매 문제는 불우한 환경의 여성들에게 올바른 사회 진출 기회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 구조적 문제였지, 집창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불체자 문제 역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미국 경제의 구조에 상당 부분 원인을 두고 있다. 영주권자가 영주권 카드를 지니고 다니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영주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을 무조건 감금시킬 것인지, 무조건 추방시킬 것인지, 과연 그런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경찰력이 있는지, 재정은 확보되어 있는지 등을 나는 장롱 속의 법을 꺼내 든 애리조나 의회에 묻고 싶다.

상징적인 법, 포퓰리즘에 기반을 두는 법은 악법이다. 공평하게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미국민들만 애꿎게 고생시킬 것이며, 공식적인 인종차별의 빌미만 제공해준 셈이다.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을 잣대로 법을 집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합리적인 의심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오늘날도 법원에서 논의될 만큼 어려운 말이다. 멋대로 집행되는 법, 국민이 공감할 수 없는 법은 악법일 뿐이다.

 

 

한미 법률 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출처: 워싱톤 중앙일보 전문가 칼럼 2010 52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034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