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친한 친구 보증을 섰습니다. 친구가 학비가 없다고 해서, 학생 융자를 받을 때 보증을

섰습니다. 그 후로 친구는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학생

융자를 갚지 않아서, 은행은 저에게 융자금 상환을 하라고 독촉을 합니다. 저는 요즘 생활이

어려워 파산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왜 융자금을 갚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자도 너무

비싸고, 학위도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오히려 저를 원망합니다. 그때

보증을 안 서줬다면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을 텐데, 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필요도 없는

학위를 땄다고.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저는 엄밀히 피해자인데, 오히려 제게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을 하고, 돈 갚겠다는 얘기는 절대 안 합니다. 제가 파산을 하면 보증 선 빚은 없어지나요?


답: 아연실색啞然失色이라는 말이 있지요. 너무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 놀라서 얼굴의 빛을

잃는다는 뜻인데. 사람이 살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더러 있습니다. 보증을 서 줬는데,

이제 와서 왜 보증을 서 줬냐고 도리어 따진다면 정말 황당한 경우겠지요. 직장도 있는 사람이 왜

돈을 안 갚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려웠을 때 도움을 준 친구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가 떠 오르네요.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까치

새끼를 구해줬더니, 어미 까치가 나중에 죽음으로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 무릇 짐승도 은혜를

아는데, 인간 중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네요. 오죽하면 배은망덕背恩忘德 이라는 말이

우리 말 중에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일까요.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친구라고 할 수

없겠네요.

예로부터 보증을 설 땐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고 했습니다. 미국 생활에서 누가 만 불을 빌려달라고

하면, 선듯 못주면서, 십만 불짜리 보증을 서라고 하면 덜커덕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것하고, 보증을 서는 것하고 그 후과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안 갚으면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십만 불을 안 갚으면 보증 선 사람이 고스란히 그

돈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분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파산을 해도 학생 융자금 보증에

대한 책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친구 학비를 위한 보증이라고 하셨는데, 질문하신 분이 오히려

비싼 학비를 내고 인생을 배우는 상황이 되고 말았네요. 

문의 703-333- 2005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워싱톤 중앙일보 2016년 6월 6일 전문가칼럼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330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