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 동안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머리가 짧으니 빗질할 필요도 없고 샴푸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에게는 네살배기 아들이 있는데 무등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퇴근하거나 아침에 출근할 때도 늘 아들은 무등을 태워 달라고 조른다. 무등을 태워 주면 좋다고 끼륵끼륵 소리를 내며 손으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쓰다듬는다. 머리가 길었을 때는 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쓰다듬을 뿐이다.

머리가 길었을 때 무등을 태워주면 늘 헝클어진다. 빗으로 곱게 빗고 젤로 정성들여 손질한 머리를 아들은 마구 헝클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닌다.

당나라 맹교가 지은 '유자음(遊子吟 나그네 설움)'이라는 글 말미에 이런 말이 있다. 수언촌초심 보득삼춘휘(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누가 한 치 풀잎의 마음으로 봄날의 햇살을 갚을 수 있다 했는가).

여기서 봄날의 햇살이란 부모의 은혜를 뜻하고 한치 풀잎의 마음이란 자식의 마음을 뜻한다. 부모의 은혜는 하해와 같아 그 끝이 없고 봄날의 햇살과 같아 도저히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은혜를 갚아 보려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내 아버지는 팔순을 바라보신다. 요즘 들어 아버지의 등이 많이 굽어 보인다. 성인이 된 아들을 아직 무등을 태우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날을 맞으며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출처: 워싱톤중앙일보 오피니언 기고 2012년6월15일 임종범 변호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6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