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엄마는 2017년 3월 10일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비소세포 폐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말기 진단을 받고, 15개월 후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항암을 열 차례 받으셨고, 돌아가시기 3개월 전부터는 항암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돌아가실 당시 암은 양쪽 폐에 퍼졌고, 뼈에 일부 전이됐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폐암으로 투병하는 환자와 그 가족을 위로하고, 또 예정된 죽음을 예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함입니다.


1. 임종 10일 전

엄마는 식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력이 없다고 말씀하셔서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2. 임종 7일 전

엄마는 다리가 많이 부었습니다. 특히 종아리가 많이 부어올랐는데, 병원에선 이뇨제를 주었습니다. 호흡이 매우 거칠어 지셨습니다. 오른손은 눈에 띄게 부어올랐고, 왼손은 살짝 부었습니다.


3. 임종 5일 전

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코에만 대는 호흡기였습니다. 여전히 식사는 전혀 안 하시고, 말을 거의 못하십니다. 말을 하려면 "흐흐" 소리가 나오고, 말하기를 무척 힘들어하셨습니다. 누워계시는 걸 힘들어하셨습니다. 자주 상체를 일으켜 앉으셨습니다.


4. 임종 4일 전

앉은 상태로 주무셨습니다. 목은 앞으로 숙이시고, 허리는 굽은 상태였습니다. 의사는 항암을 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대변을 옷에 지리셨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기저귀를 대 드렸습니다.


5. 임종 2일 전

병원에선 진통제를 포함한 몇 개의 알약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는 엄마는 이미 알약 먹기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지난 일주일여 기간의 알약이 서랍에 모여 있습니다. 아침 회진 때 의사는 엄마가 아침 식사는 잘하냐고 묻습니다. 요즘 전혀 식사를 못 하신다고 했더니, 아차 싶은지 머쓱해 하며 말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오후에 엄마는 의식을 잃으십니다. 심장이 멈추고, 모니터의 신호는 모두 일자를 긋습니다. 긴급히 처치실로 모셔지고, 간호사들은 능숙한 솜씨로 응급조치를 취합니다. 10분여 후 엄마는 의식을 되찾습니다. 응급실의 누군가가 임종이 임박하셨다며, 가족을 부르라 말합니다.


엄마는 입 전체를 가리는 산소호흡기를 쓰십니다. 의식은 더욱 또렷해지신 듯. 엄마의 지인들이 처치실로 한둘 모입니다. 개중엔 엄마의 머리를 잡고 흔드는 분도 계십니다. 자기가 누군지 알아보냐며 큰소리로 외치십니다.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분은 엄마 머리를 자꾸 흔듭니다. 다른분들은 조용히 오열하십니다. 밤이 되자 모두들 집으로 가시고, 엄마는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십니다. 호흡기를 종종 손으로 밀치십니다.


말은 못하지만, 엄마는 고개짓으로 그리고 힘없는 손짓으로 의사 표현을 하십니다. 엄마는 미국에 있는 막내를 보고싶어하십니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기다림은 더욱 힘이 듭니다. 목이 마르다며 자주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숟가락으로 반 숟가락씩 물을 네 다섯번씩 드립니다. 호흡기를 떼고 있으면 간호사가 짜증을 냅니다. 간호사는 간간이 들러 모니터를 체크하고 소변량을 확인합니다. 오늘부터 엄마는 소변 호스로 소변을 봅니다. 몸에 삽입된 튜브 때문에 엄마는 자주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십니다. 그럴때 마다, 그냥 편하게 누워서 소변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엄마 다리와 발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드립니다. 피부의 느낌은 살아계신듯, 엄마는 무척 기뻐하십니다. 발 다리 다음엔 손과 등도 닦아드립니다. 역시 매우 기뻐하십니다. 머리는 빗으로 여러번 곱게 빗어드립니다. 항암을 3개월전에 그만 두신 엄마의 피부는 무척 고왔습니다. 제 평생 본 엄마의 피부 중 가장 아름다운 피부였습니다. 어느정도 물기를 머금고, 탄력을 지닌 엄마의 피부는 전혀 환자의 피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암으로 피골이 상접한 다른 환자와는 상당한 대조를 보였습니다. 엄마 손목에 걸린 이름표가 엄마의 부은 손목을 조이는 듯해 눈에 거슬렸습니다. 느슨하게 해 달라고 요청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임종 하루 전

엑스레이와 혈청 검사 결과 엄마는 상당히 위독하시다는 판정이 나옵니다. 의사는 엄마에게 그 어떠한 음식도 드리지 말고, 물조차 주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나중에 호흡에 큰 곤란을 겪게되시면 모르핀을 투여하고 싶은지 물어봅니다.


엄마는 자주 목이 마르시다며, 물을 원하십니다. 거즈에 물을 적셔 드리면 입술로 쪽쪽 빠십니다. 갈증이 심하신듯. 종국엔 다시 숟가락으로 물을 드립니다. 많이는 못드린다고 송구해하면서 물을 먹여드립니다. 지금도 후회되는 일은 그 때 물을 더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누워계시다, 앉아계시다를 밤새도록 반복하십니다. 때때로 의식이 없는듯 보이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있을 막내를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기다림이 역력합니다. 간혹 심박수가 급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산소포화도는 대략 86 에서 96 사이를 오갑니다. 호흡기를 떼고 한 일 분 지나면 90 이하로 떨어지고, 호흡기를 다시 대면 곧 90 이상으로 돌아옵니다. 심장이 안좋은 엄마의 맥박은 모니터에 불규칙한 파형을 그립니다.


7. 임종하시는 날

아침에 간호사가 더 이상 알약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암병동은 일상처럼 간호사들이 분주히 다녔고, 낮은 말소리와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는 앉아서 아침을 맞이하십니다. 굽은 목에 움직일 수 없는 머리는 애처러울 뿐입니다. 엄마는 목을 가누지 못하십니다. 앉은채로 당신의 발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간호사는 엄마의 소변량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소변량이 현저히 줄면 임종에 가까웠다는 징후라는군요. 엄마의 소변량은 그다지 많이 줄은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간밤에 암환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어제 밤에 엄마는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그 분은 엄마가 계시던 처치실로 들어가셨는데, 처치실로 들어가신지 8시간이 안되어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항암 치료 중에 돌아가신듯 얼굴의 광대뼈는 두드러졌고, 피부는 탄력이 없었습니다. 안색은 까만 색에 가까운 짙은 흙색이었습니다. 엄마의 피부를 보며 내심 항암을 그만두기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의 암환자는 항암 중에 죽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그나마 생의 마지막 길을 자연인으로, 몸속에 독한 약이 없는 상태에서 돌아가신다 생각하니 나름 위안이 됩니다. 죽음 앞에서 그것도 위안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떠날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막내가 끝내 도착하지 못해 아쉬울 뿐입니다.


엄마는 대략 오전 8시에 처치실로 다시 옮겨지셨습니다. "처치실"이라는 이름에 상당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밖에 방 이름을 못짓는 병원이 못마땅했습니다. 엄마는 처치실에 옮겨져 몇 시간 안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의사는 "2017년 3월 10일 오전열시33분 이계옥씨 사망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총총이 처치실을 떠났습니다. 유가족과는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하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의사선생님들, 간호사선생님들 모두 나름 노력했고, 중간중간 그분들에게 섭섭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엄마와의 이별이 너무 마음 아파 그랬던 것. 이젠 그분들에게 고마운 마음만 남네요.)  


8. 임종 하시는 순간

엄마는 돌아가시기 10여 분 전에 몸을 일으키신 후, 또렷하고 큰 소리로 막내는 어딨냐고 물으십니다. 그 후 "아퍼" 라며 진통이 심하다고 호소하십니다. 갑자기 심박 파형이 마구 바뀌더니 심박 수치가 40 에서 130, 150, 70 등으로 마구 널뜁니다. 앉은 상태에서 눈자위가 하얂게 돌아가시고, 철퍼덕 병상에 쓰러지십니다. 몇 번 거칠게 호흡을 하시는데, 곧 이어 가래가 끓는듯한 호흡소리가 몇 번 나오곤 일순 조용해집니다. 모니터의 모든 신호는 다시 한 번 일자를 긋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94588817592662&id=100011246414849


임종범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