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계가 무서울 때가 있다. 4:44분. 그럴 때면 언뜻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이른 새벽, 잠을 깬다. 알람은 5시에 맞춰놓았건만 4시 4십4분에 눈을 뜬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시간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얼어붙은 듯, 그렇게 나의 디지털 시계는 4:44에 멈춰있었다.


불현듯 겁이 나서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그러곤 아버지 집으로 향한다. 요 며칠 아버지의 상태가 불안하다. 나흘 전엔 사람을 못 알아보실 정도로 정신이 없으시더니, 어젠 정신이 아주 맑으시다. 어젠 말씀도 차분히 하시고, 귀도 잘 들리시는 듯, 한 번에 바로바로 알아들으신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솟는다고 하던데, 아버지도 회광반조는 아닐까? 나는 이제까지 죽음이라곤 엄마의 죽음만 보았을 뿐, 다른 이의 임종은 지켜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어떤 식으로 돌아가실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여하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두려워 허겁지겁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방엔 불이 꺼져 있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아버지 집에 들어선다. 약간은 퀴퀴한 냄새가 난다. 엄마가 계셨을 땐 늘 음식 냄새가 나던 곳이 이젠 곰팡내가 난다. 어젯밤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다. 현관의 불을 켜고, 복도를 지나 아버지 방문 앞에 선다. 방문은 닫혀 있다. 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서도 아버진 문을 닫고 주무신다. 늘 정리된 걸 좋아하시는 아버지. 문을 열어 놓으면 어수선하다고 하신다.


아버지 방문을 열기 전에 복도의 불을 켠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살짝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연다.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오른쪽 어깨로 누워 계신다. 엄마는 늘 왼쪽 어깨로 누워계셨는데.


물끄러미 아버지의 치켜진 어깨를 바라본다. 잠시 후 약간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는 아버지의 어깨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곤 아버지의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린다. 아버진 평소에도 코골이가 없으셨다. 너무 조용히 주무셔서 한 번은 아버지 코 밑에 손가락을 데 보았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숨 쉬는걸 그다지도 어려워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아버진 호흡 문제는 없으신 듯.


이 새벽 아버진 잘 주무신다. 밤새 안녕하시다. 디지털 시계 덕에 아버지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젠 시계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