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려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으셨습니다. 아들 온다고, 샤워도 하시고, 옷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신 엄마.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으셨는 듯, 휴게실에 나와 앉아 계셨습니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오신 분이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 강건한 모습에 아들은 큰 위안이 됐습니다.  


먼 길 왔다고, 불편하진 않았는지, 사무실 일은 누가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등등 궁금한게 많으신 엄마. 질문 하나하나 얼마나 고마운지. 당신의 어려움은 전혀 돌보지 않으시고 아들 걱정만 한 소쿠리 가득.  


몸은 많이 야위셨지만, 엄마 눈의 총기는 여전했습니다. 혹시 이 아들을 못 알아보실까 걱정도 했는데, 전혀 근거 없는 기우였습니다. 그래서 또 감사.  


저녁식사는 병원 앞 "삼성치킨"에서 가져 온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와 양념 치킨 한 마리. 엄마는 이미 족발을 세 조각 드셨노라 하셨지만, 아들이 발라 드린 살코기는 열심히 드셨습니다. 맛이 제대로 느껴질까 싶어, 소금 양념을 더 찍었다, 혹시 몸에 안 좋을까 싶어 다시 털어 냈습니다.  


식사는 삼남매와 함께 휴게실에서 하셨습니다. 엄마는 몸에 아무런 장치도 달지 않으신채, 자유로운 상태셨고. 일어서고 앉을 때 도움이 약간 필요한 것 외엔, 거동이 자유로우셨습니다. 병원 원로 목사님에 따르면 기적이라고 하시더군요.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을 때, 보통 엄마 정도의 상태에선 의식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곤 한다는군요. 중보 기도가 하늘에 닿았고, 엄마의 의지가 굳건해 살아 나셨다고. 기도해 주시고, 마음 써 주신 중보 방의 한 분 한 분 감사드립니다.  


엄마를 만나면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공항에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아주 좋으신 엄마를 뵈니 반가운 마음만 앞 설 뿐, 눈물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쓸데 없는 이 아들의 걱정이었지요.  


암 닥터는 다음 주에 다시 항암을 하자고 하시네요. 겨우 겨우 이승에 머물게 된 엄마에게 항암은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부분에 대해 저희 삼남매의 생각은 일치합니다. 다만, 엄마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기에, 엄마 상태가 더 낳아지면 그 때 여쭤 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도, 어떻게 사느냐 만큼이나 중요하니까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말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젠. 언젠가는 우리 이별을 해야 하고, 또 그 후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재회의 희망을 품고 사는 이 아들에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지난한 고통의 나날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희생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결국에 나와 엄마는 따로따로가 아닌 한 몸이란걸 알게 됐습니다. 이 아들이 있는 한 엄마도 함께 한다는 진리를. 엄마를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이 땅에서 소멸되지 않음을. 인미 누님이 올려주신 스티브 잡스의 회고 내용 감사합니다. 사랑의 기억 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그 말 제 가슴에 와 닿네요.  


버지니아에서 제가 쓴 일기장을 가져 왔습니다. 삼십 여년 전,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인데, 두 권 중 한 권이 남아 있네요. 엄마 곁에서 읽어 드릴 생각입니다. 이 아들을 기다리며 살아 주신 엄마에 대한 조그만 선물이지요.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뜨겠지요. 한국에서 지낼 앞으로의 3주, 제 인생의 가장 달콤한 휴가가 될 것 같습니다.


임종범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