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와 늙은이의 경계는 어디 있을까? 시드니 밤거리를 걷다 문득 대만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이미 27년 전의 일이건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오랜 시간 한 번도 기억해내지 못했던 그 옛날 일들이 생각났다. 시드니 항구의 바닷바람이었으려나,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었으려나, 아니면 엄지손가락 만큼이나 큰 바퀴벌레들이었으려나?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머리 속의 어떤 단추를 눌렀다.

대만에서의 생활. 그때 나는 오토바이가 있었다. 중고였지만 제법 잘 달렸고,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었다. 마음이 일면 어디로든 달렸다. 양명산에도 장개석 기념관에도 또 밤새도록 춤추던 그곳으로도. 어디가 됐던, 나의 애마는 나를 태우고 달렸다. 무더웠던 그 여름, 나는 밤이 되면 장개석 기념관에 자주 갔다. 중정 기념관이라 불리우던 그곳엔 젊음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다.

밤이 되면 그곳은 젊은이들의 놀이터요, 쉼터였고, 사랑을 하는 곳이었다. 정말 그들은 사랑을 했다, 심하게. 아침이 되면 여기저기 신문지며, 속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훗날 연세대의 청송대에서 목격한 그런 신문지며 옷가지들처럼.

대만은 무더웠다. 빵집 아저씨는 웃통을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반죽을 빚었고, 그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은 반죽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던 그 가게 손님들이 경이롭기조차 했다.

여하튼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돼 있던 대만에서의 삶이 시드니 항구를 지나며 떠올랐다. 어쩌면 짧은 치마를 하고 지나갔던 세 동양 여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리가 유난히 아름다웠던 사람들, 내 기억 속의 대만 아가씨들이다.

젊은이는 미래를 보고, 늙은이는 과거를 본다고 하던데, 이제 나도 청년에서 노년으로 성큼 그 경계를 넘은 것인지 사뭇 두렵다. 하지만, 그 옛날의 기억은 이 밤 나에게 평안을 준다. 무더웠던 어느 밤에 불어온 그때 그 바람이 이 밤 내 맘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임종범 2017년11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