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터부르넨, 한글로 쓰고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곳 사람들 내는 소리와 똑같다. 한글의 위대함을 스위스에서 다시 확인한다. 이곳 사람들은 한글로 쓴 그들의 나라 이름을 좋아한다. 하늘 높이 솟은 산, 넓은 호수,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 ㅅ ㅡ ㅇ ㅜ ㅣ ㅅ ㅡ.

중국인으로 보고 차별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그런 느낌은 없었다. 첫날은 미국발 비행기가 늦게 떠나 부뤼셀에서 겨우 환승할 수 있었다. 와싱턴에서 제네바로 오는 직항은 없다. 몸은 가까스러 왔지만, 짐은 다음 비행기로 왔다.

제네바에서 라우터부르넨까진 두시간 반 거리. 닿을 듯 가까운 곳엔 늘 산이 있었고, 너른 하늘 아랜 그 하늘을 닮은 호수가 있었다. 스위스는 평지가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그래서 목축, 수공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알프스는 보기엔 멋이 있는데, 그다지 실용적이진 않은가보다.

오늘은 인터라켄, 브리엔츠 호수, 이젤발트를 돌고 왔다. 인터라켄은 호수 사이에 있는 마을을 뜻한다. 라켄은 호수, 인터는 사이를 뜻한다고 한다. "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난 늘 이어령 선생님의 사이에 관한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는 엄마 아빠 사이에 태어난 존재라는 말씀.

브리엔츠 호수 물빛은 에머랄드였다. 호반에서 바라본 산기슭엔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었다. 이곳의 모든 집들은 나무로 지어야하는 듯. 콘크리트, 시멘트 등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슬레이트 등의 재질도 아주 조금만 사용하는 듯했다. 오래된 집은 100년도 넘어 보였다.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 마당엔 빨래가 널려있었고 담벼락엔 장작더미가 기대어 있었다.

호수를 따라 난 국도를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엔 이젤발트에 들렀다.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 온 동양인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었다. 방문객 열에 아홉은 동양인, 특히 동남아인들이었다. 새삼 한류가 이렇게 스위스에까지 영향을 미쳤구나 생각해봤다. 그곳에서 만난 동양인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봤던 것같았다.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눈빛은 다소 우호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라우터부르넨으로 돌아오는 길엔 패라글라이더들이 보였다. 사랑의 불시착 첫 장면이 떠올랐다. 내일은 룽게른을 들러볼 예정인데, 제대로 찾을 수 있을려나. 길을 잃어도 이곳에서 아쉬움은 없을 듯. 이곳은 산 위에 서있는 포클레인조차 이쁜 곳이니.

임종범 2021년9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