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사귄 친구들은 대체로 환경의 산물이다. 학교에서, 동네에서, 교회에서 등, 내 주위 환경에 따라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귀는 친구들은 내 선택의 산물이다.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기면서, 내 의지에 따라, 내 노력에 따라, 생기는 관계인 것이다.

오랜만에 동창을 만나거나, 고향 친구를 만나면 멋쩍은 때가 있다. 친구가 이혼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서로 모르고 있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친한 친구인데, 마치 서로 모르는 사이인 듯 서로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환경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평소에 왕래가 없다면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소원함이 있다. 친구는 죽마고우가 최고라 하지만, 그것도 서로 어느 정도 왕래가 있었을 때 이야기인 듯. 얽히고설킨 현대의 복잡한 관계는 어렸을 때 알고 지낸 사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론 쉽게 우정을 논하기 어렵다.

직장에서 사귄 동료들은, 직장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직장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서로 소통하고, 때론 의지하며 그렇게 지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의 우정은 직장을 떠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색깔이 바랜다. 마치 철 지난 나무엔 앙상한 잎새만 남듯이 그런 뛰엄뛰엄 한 관계만 남는 것이다.

사회인이 되어 친구 사귀기는 힘들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서로의 이해가 갈리고, 생활이 바쁜 와중에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 친구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다.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언뜻 인공적인 면도 있지만, "친구"란 만드는 것이다.

환경이라는 공통분모를 넘어, 서로의 관심사, 삶에 대한 이해와 철학, 사물을 보는 사고의 방법과 깊이 등에 따라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정이란 노력 없이 얻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나의 선택, 나의 의지에 의해 얻어지는 결실이다. 기나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인내하며,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이겨낸 나무가 가을에 값진 열매를 맺듯, 그렇게 수고한 자에게 우정이라는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어른이 된 나에게 이제 친구란 선택이다. 소중하게, 진지하게, 감사하며 접근해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친구여 생일 축하한다.

임종범 2017년5월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