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이가 꺾어진 백이다.
고민이 하나 있다. 예전엔 신조가 "짧고 굵게"였는데, 이젠 "가늘고 길게"로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들며 원수는 늘어만 간다. 나의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썩어 문드러지실 분들이 있다. 기억력이 감퇴하면서 저절로 용서된 분도 여럿 계시지만, 여전히 원수의 수는 늘어만 간다.

이제 내가 직접 원수 갚긴 힘들다. 아니 위험하다. 원수의 능력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또는 이성이 집을 떠났고, 상식하고 담을 쌓고 사시는 분이기에 위험하다. 그래서, 이젠 그들이 하나하나 꼬꾸라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가늘고 길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다만, 두려운 것은, 너무 길게 살다 보면 원수의 이름조차 잊을까 걱정이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면 원수의 이름도, 얼굴도 모두 버려야 하는 걸까? 반백이 되면서 쓸데없는 생각이 하나 더 늘었다.

버려야 하는데.

임종범 2018년1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