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다.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시고, 정신도 희미하신 듯 말을 잘 못하셨다. 식사도 혼자 못하셔서 간병인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드렸다. 손주, 손녀가 왔는데도 예뻐해 주시지 못했다. 안아주시지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지도 못했다. 올해 여든셋이 되시는 아버지, 그동안 허리가 아프셔서 거동이 불편한 적은 있었지만, 사람을 못 알아보신 적은 없었다. 


오늘 아버지를 뵈러 갔다. 가까이 살면서 매일 뵈러 가지 못함이 못내 죄송하다. 아버지는 간병인을 일찍 집으로 보내시고, 나하고 얘기를 하고 싶어 하셨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고, 아버지는 여기저기에 숨겨두신 돈을 꺼내셨다. 그동안 내가 드린 용돈을 모아 두신 것이다. 나에게 돈을 모두 주시면서, 당신이 며칠 아파보니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숨겨둔 돈을 아무도 못 찿을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이 아들에게 돈을 주시면서, 아버지는 돈을 맡겨둘 사람은 아들밖에 없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눈이 점점 깊어지신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마치 유리알인 듯, 빛을 반사한다. 콧물도 나오고, 침이 많아지셨다. 입술은 침으로 젖어있다. 신진대사가 느려진 것이다. 한 여름의 찌는 더위인데도 아버지는 춥다고 하신다. 그래서, 집 안에서도 재킷을 입고, 전기장판을 키신다.  


오랜만에 아버지 정신이 맑으시다. 이 아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시고. 어쩐 일인지 목소리를 한 번도 크게 하지 않으신다. 귀도 잘 들리시는지 모든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하신다. 오늘 이 밤,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올 때, 아버지를 꼭 안아 드렸다. 그리고 “사랑해요 아버지”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그래그래 하시며 내 등을 토닥이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계단 조심해라”라고. 아버지에게 나는 여전히 어린 아들이었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아버지는 발코니로 나오셔서 손짓을 해주셨다. 잘 가라고. 나도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계시라고.  


사랑하는 아버지, 이 밤 안녕히 주무세요.


임종범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