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관한 한국인과 미국인의 정서는 많이 다르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빚은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미국인의 정서에는 빚은 하나의 도구일 뿐, 빚에 의하여 자유가 구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파산은 빚을 갚지 않겠다고 밝히는 행위 이다. 변제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고, 빚을 없애 달라고 법원에 호소 하는 행위 이다. 법원은 이러한 호소(탄원)를 받아 들여 실제로 대부분의 빚을 없애준다. 면책이라는 법률 용어가 있다.  영어로는 디스차지(discharge) 라고 한다. 책임을 면해 준다는 뜻으로, 채무자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빚은 법원에 의하여 면책이 된다. 사채, 신용카드, 모기지, 병원비, 빚 보증, 월세, 자동차 융자, 공사비 등은 모두 면책이 된다. 면책이 안 되는 빚은 세금, 학비융자금, 양육비 등이 되겠다.

 

미국에서 파산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에는 이제까지 43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제44대 대통령이다. 총44명의 대통령 중 4명의 대통령이 파산을 한 적이 있다. 링컨, 제퍼슨, 그랜트, 맥킨리 등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파산을 한 적이 있다.  파산을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제16대 대통령으로서, 남북전쟁 종결, 노예 해방 등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링컨 대통령, 그는 한 때 잡화점을 운영하다 큰 빚을 지게 됐다. 그는 결국 파산을 신청하고 파산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정치인으로 재기 하였고, 결국은 미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업적을 쌓은 대통령으로 역사에 그 이름이 길이 남겨져 있다.

 

대통령만 파산을 통해 재기를 꿈 꾸어 온 것은 아니다.  많은 미국의 사업가들도 역시 파산을 통해 구제를 받고, 재기의 발판을 다져 왔다.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 디즈니월드의 주인공 월트 디즈니, 하인즈 케챱의 주역 헨리 하인즈, 허쉬 초콜릿으로 유명한 밀튼 허쉬 등의 사업가들은 모두 사업에 실패하고 많은 빚을 진 적이 있으며, 그들은 한결같이 파산을 통하여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현대 사회의 유명한 인물 중에는 CNN의 간판 앵커 래리 킹,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등의 인물이 파산을 통해 재기한 인물로 손꼽힌다.

 

한번 파산으로 사회에서 매장 된다거나, 다시는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앞에 열거한 분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들이 되었을 것이며, 오늘의 미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다. 실패자에 의하여 쓰여진 역사다. 실패를 통하여 성공을 배우고, 실패자를 격려하며, 새로운 기회를 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을 할 수 있었다.  파이오니어 정신은 실패를 허용한다. 미국의 정서는 실패자를 용서한다. 법이 실패한 자를 포옹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그 법이란 바로 파산법을 뜻한다.

 

파산법은 자본주의 사회가 운영되는데 필수적인 모험과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의 헌법은 1787년에 채택되었다, 파산법은 1800년에 제정되었다. 헌법만큼이나 오래된 파산법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에는 실리콘 밸리로 잘 알려진 샌호세라는 도시가 있다.  벤처 사업가들 에게는 꿈의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곳의 우스개 소리가 있다. "투자를 하려면 파산을 해 본 사람에게 하라"고 하는 말이다. 과연 미국적인 사고 방식이다. 실패를 맛 본 사람은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인가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다. 이것이 미국의 정서이다.

 

한국의 정서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한국은 5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농경사회를 이루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사를 통해서 생활을 해왔다. 재산이라고 하는 단어는 땅을 의미했다. 땅을 많이 가진 자가 부자였고, 재력가였던 것이다. 한 동네에 사돈에 팔촌까지 함께 살았고,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같은 동네에서 살다 보니, 빚을 떼먹고 도망가서 산다거나, 빚을 갚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 우리 한국 정서의 현실이었다.

 

가을의 수확이 안 좋아서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 종살이를 하거나 아이들을 팔기까지 했다. 빚이라는 것은 꼭 갚아야 되는 것이며, 빌려준 자는 당연히 받을 것을 기대하였다. 법은 언제나 채권자, 빌려준 자를 보호해 왔다.  농경사회, 계급주의 사회에서는 토주를 보호하는 법이 중요했었고, 그런 법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했었다. 한국의 정서는 빚을 안 갚는 자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실패자를 용납하지 못하고, 변제 능력이 없는 자를 낙오자로 낙인 찍었다. 법은 실패한 자를 보호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파산자는 죄인이라는 공식이 존재 했을까!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법도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다고 한다. 채무자를 보호하는 법도 만들어 지고, 신용 불량자를 구제하는 법도 제정이 되었다고 한다. 법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정서를 낳는다고 가정해 볼 때, 한국인의 정서도 빚에 관해서는 좀 더 관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곳이 달라졌다고, 마시는 물이 다르다고 사고 방식까지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다. 하지만, 기왕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법이라는 것이 꼭 우리를 구속하는 법일 필요는 없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법, 우리에게 제2의 기회를 허용하는 법이라면 과감히 그 법의 보호를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수 있겠다. 필요하다면, 파산법을 활용하자. 다시 한번 아메리칸 드림을 꾸어 보자.

 

임종범 변호사 한미 법률 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