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은 아무래도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동반한다. 현재 수입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파산을 하는 것이다. 파산을 고려할 때쯤이면, 이미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고갈 상태에 들어선 것이다. 여러 가지 옵션 중에 파산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길이 막혀 있기에 파산을 고려 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죽지 못해 파산 한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다.

한국인의 정서에 있어 파산이라는 것은 대단히 큰 사건이다. 농경 사회 에서 수 천 년에 걸쳐 내려온 한국인의 정서에는 빚은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 빌려준 사람도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빌린 사람도 대를 거쳐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빚 받으러 저승 간다"는 말이 생겼겠는가? 모든 재산의 근본은 땅이었기에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을 못 갔다. 자식이라도 팔아서 빚은 갚아야 했고, 그것도 안되면 종살이를 했다.

파이오니어, 개척 정신으로 상징되는 미국인은 필요에 따라 자주 이동했다.  더욱 더 풍요로운 곳, 자원이 더 많은 곳으로 끊임 없이 미국인은 이동했다.  처음에는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그 후 동에서 서로, 도시에서 촌으로 미국인은 쉬지 않고 움직였으며, 미국 사회는 그러한 이동성을 중요시했다.  뜻하는 대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을 자유라고 부르고, 그 자유를 신성시 했다.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빚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족쇄이다.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빚"이라는 의무와 "자유"라고 하는 이념 중에 자유를 택했다. 자유로운 자는 더욱 깊은 사고를 하고, 더욱 높은 생산성을 가질 수 있기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빚이라는 족쇄를 채우기 보다는 자유를 주는 쪽으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에 "의회는 미합중국에 적용되는 일관된 파산법을 제정한다"라고 의회의 책임과 권한을 명시하였다. 이는, 그 만큼 파산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건국의 아버지들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빚을 지면 마음대로 이동도 하지 못하고, 빚쟁이에게 고분고분하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빚을 지고서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새로운 이 땅은 미국이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도 역시 미국인이 되는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빚"이라는 개념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인의 정서에 있어 빚이란 하나의 도구이다. 사업을 하거나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빚은 필요에 따라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하나의 도구에 휘달리어 자유를 박탈 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헌법에 의해 설립된 파산법원을 통하여 파산을 하자. 빚이라는 족쇄를 벗어 버리고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파산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