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관한 한국인과 미국인의 정서는 많이 다르다. 한국인의 정서상 빚은 꼭 갚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정서에서 빚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빚 때문에 자유가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적 사고방식이다.

파산은 변제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빚을 갚지 않겠다고 밝히는 행위다. 법원은 이러한 호소(탄원)를 받아 들여 실제로 대부분의 빚을 없애준다. 사채, 신용카드, 모기지, 병원비, 빚보증, 월세, 자동차 융자, 공사비 등은 모두 면책(discharge) 된다. 면책이 안되는 빚은 세금, 학비융자금, 양육비 등이다.

미국에서 파산법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4명이 파산 경력을 갖고 있다. 링컨, 제퍼슨, 그랜트, 맥킨리 대통령이 바로 그들이다. 파산을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많은 사업가들도 파산을 통해 구제 받고,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 디즈니월드의 주인공 월트 디즈니, 하인즈 케찹의 주역 헨리 하인즈, 허쉬 초콜릿으로 유명한 밀튼 허쉬 등은 한때 사업에 실패해 많은 빚을 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파산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CNN의 간판 앵커 래리 킹, 부동산 재벌 도날드 트럼프도 파산을 통해 재기한 인물로 손꼽힌다.

미국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다. 실패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다. 실패를 통해 성공을 배우고, 실패자를 격려하며, 새로운 기회를 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수 있었다. 파이오니어 정신은 실패를 허용한다. 미국의 정서는 실패자를 용서한다. 법이 실패한 자를 포용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여기서 그 법이 바로 파산법을 뜻한다.

파산법은 자본주의사회를 지탱하는 데 없어선 안 될 모험과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미국 헌법은 1787년 채택됐고 파산법은 1800년 제정됐다. 헌법 만큼이나 오래된 파산법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가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샌호세이는 벤처 사업가들에게는 꿈의 도시로 불린다. 그곳에서는 “투자 하려면 파산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하라”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 과연 미국적인 사고 방식이다. 실패를 맛 본 사람은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인가 배웠을 것이고 그래서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미국이다. 이것이 미국의 정서다.

반면 한국인의 정서는 많이 다르다. 한국인은 아주 먼 옛날부터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아왔다. 한 동네에서 사돈의 팔촌까지 함께 살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태어난 고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빚을 떼먹고 도망간다거나, 빚을 갚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생각 조차 못했다.

법도 언제나 채권자의 편이었다. 한국의 정서 또한 빚을 안 갚는 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변제 능력 없는 자를 낙오자로 낙인찍었다. 오죽하면, 파산자는 죄인이라는 공식이 존재했을까. 물론 최근 들어 한국에도 채무자를 보호하고 신용 불량자를 구제하는 법이 제정됐다고 한다. 법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정서를 낳는다고 할 때, 한국인의 정서도 빚에 관해 좀 더 관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곳이 달라졌다고, 사고 방식까지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 한인들도 미국적 기준과 가치관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법이 반드시 사회 구성원을 구속하는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법, 우리에게 제2의 기회를 허용하는 법이라면 과감히 그 법의 보호 아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파산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필요하다면, 파산법을 활용하자. 다시 한번 아메리칸 드림을 품어 보자.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

전문가 컬럼 (와싱톤 중앙일보 2010년3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