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을 수사할 때 우선은 용의자를 설정하고 그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추적한다. 용의자를 설정하는 방법은 살인동기다. 금전적인 이유로 또는 원한이 있어서 사자의 죽음을 원했다면 그는 살인동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살인동기가 강할수록 그 용의자가 살인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가령 유산을 상속 받을 사람이라든가 보험금을 받을 대상 또는 평소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살인용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특정인에 의한 아무런 연고도 원한도 없는 사람에 의한, 소위 ‘묻지마’ 살인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동기를 찿기 힘들기 때문에.


 
김정일의 죽음은 자연사라고 북한 당국은 발표했다. 하지만 급작한 그의 죽음은 많은 의문에 휩싸여 있다. 만약 그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라면 우리는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살인자를 알기 위해서는 용의자가 누구인지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용의자 설정 방법은 역시 살인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가 김정일의 죽음을 통해 얻을 것이 가장 많은지를.


 

김정일의 급사는 북한의 안정적인 정권 교체에 있어 크나 큰 악재다. 김정은에게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김정일은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세습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김정일은 죽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그 어떤 인물 또는 세력이 되었든 김정은에게 정권이 세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면상에 드러나 있는 김정은과 그에 반대하는 드러나지 않은 인물 또는 세력 사이의 권력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을 시발로 권력다툼은 거세어 질 것이며,  그 와중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갈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싸움에 많은 인민들이 고초를 겪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만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피냄새가 실려 있다.


김정일의 급사가 타살이 아니라고 하여도 세습이 완성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그의 죽음은 많은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우리말 중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다. 구관이 아무리 나쁘다고 하여도 새로 오는 관리는 더욱 나쁘다는 말은 수탈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경험담이다. 비슷한 말로 미국에서는 ‘알려진 악마가 미지의 악마보다 낫다’는 표현이 있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도 한국 국민 입장에서도 이제는 새로운 관리, 미지의 악마와 맞닥뜨리게 될텐데,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누가 새로운 절대자로 군림할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급사한 김정일보다 더 좋은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무자비한 독재자 김정일의 죽음은 한반도에 또 다른 시련을 예고한다.

 

 

출처: 워싱톤중앙일보 2011년12월29일 오피니언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27609